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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리타이어를 시작하며

오랫동안 기사와 칼럼을 통해 교감을 나눴던 독자님들에게 정중한 작별 인사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중앙일보라는 한 직장에서 기자로서 30년을 채우고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섰습니다. 그간 기자로서 보람찬 인생 전반전을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언론사는 사기업이지만 기자는 사기업의 이익보다는 '공적 복무'의 마음으로 일을 하는 직업입니다. 언론은 항상 정확해야 하고, 공감을 얻어야 하고, 사회가 바른 방향으로 향하도록 하는 진지성과 순수성이 있어야 합니다. 저도 그런 마음으로 기자직을 수행했지만 미흡하고 어리석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매체를 통해 다중에게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할 수 있었던 직장이었기에 중앙일보는 저 인생의 큰 무대였습니다. 약자의 편에 서고, 가려진 진실을 드러내고, 편향된 관점을 지적하는 글이 많았기에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겐 불편을 끼친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너그러운 이해를 구합니다. 그동안 저는 '100세 시대'를 주제로 한 글을 많이 썼습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심각하게 제2의 인생을 준비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인생까지 준비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첫 인생을 은퇴한 후 무의미하게 남은 인생을 보내는 이들이 주변에 많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의 선배 세대들은 장수시대에 대한 인식도 흐렸고, 은퇴 이후 새출발에 대한 훈련을 할 겨를도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보니 당장 앞에 닥친 100세 시대를 기뻐하기 보다는 막막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저도 사실은 어차피 다가올 첫 직장 은퇴 후에도 엄청나게 많이 남은 시간들에 대한 일종의 '공포감' 때문에 일찌감치 '중앙일보 이후'를 고민하고 준비해 왔습니다. 40대 초반에 주경야독으로 한의대를 마쳤고, 이후 자연건강 전문기자의 마음으로 폭넓은 의학 공부를 하면서 터득한 건강 정보들을 독자들과 나눠 왔습니다. 제가 자연건강에 천착하며 그런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한 데는 의사로서 나름대로 철학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약물과 수술 위주의 공격적인 치료가 지배하는 현대 의료계의 문제점, 병의 원인은 나에게 있으니 고치는 것도 내가 고쳐야 한다는 신념, 병의 대부분은 먹는 것에서 비롯되니 올바른 식생활을 계도하자는 생각, 이런 관점에서 그동안 '진맥세상' 코너를 통해 '건강 계몽운동'을 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급속한 노령화와 장수시대를 맞아 한인사회에 건강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진 것도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수명이 80세니, 100세니 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병치레를 하면서 장수를 하는 것은 오히려 고통일 수가 있습니다. 건강한 장수시대를 누리려면 자신의 건강을 병원과 약에 맡기는 식민지 건강이 아닌, '건강 주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저의 소신입니다. 의사들은 그것을 도와주어야 하는 소명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제 자연치유 한의사로서 리타이어(Re-Tire, 타이어 바꾸기)합니다.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고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인생의 길에서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며 새로운 길을 걸었고, 그 여정은 계속될 것입니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같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제 인생 후반전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들의 건강한 장수에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또다른 방식으로 열심히 전해드리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그동안 기자로서 받았던 과분한 애정을 자연치유 의사로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원영 / 자연치유 전문가·한의학 박사

2018-05-18

[진맥 세상] 세컨드 오피니언

졸고 '진맥 세상' 출간을 계기로 건강 강연회를 겸한 출판 사인회를 가졌다. 강연을 시작하면서 책을 몇 권 보여주었다.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로버트 멘델존) '약이 병이 된다'(우타가와 쿠미코) '환자 혁명'(조한경) '불량제약회사'(벤 골드에이커) '고혈압은 병이 아니다'(마쓰모토 미쓰마사) '유사암으로 요절하는 사람 진짜암이어도 장수하는 사람'(곤도 마코토) '콜레스테롤 수치에 속지 마라'(스티븐 시나트라) '알츠하이머의 종말'(데일 브레드슨) 등. 150여 청중들은 눈과 귀를 집중했다. "지금 소개한 책 중에서 한 권이라도 읽은 분 있으면 손 들어 보세요" 두세 명이 손을 들었을 뿐이다. 이어진 서두 발언을 요약하면 이렇다. "지금 제가 소개한 책들은 모두 의사들이 쓴 책입니다. 제목이 불온하죠. 실제로 이 책들은 의료계에 종사하면서 기존 의료 시스템과 치료방식에 문제점을 느끼고 새로운 의료 대안을 제시한 책들입니다. 일종의 양심고백을 담은 책들입니다.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와 있고, 계속 나오고 있지만 읽는 사람들은 극소수입니다. 일반인들은 의료 분야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데다 의사와 약이 알아서 내 몸을 보호해줄 것이라 믿으니 굳이 읽지 않습니다. 의사들은 대체로 바쁘고 배운대로 치료해도 돈벌이에 지장 없으니 다른 의견에 시큰둥합니다. 심지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의사들을 '돌팔이' 취급해 왕따시키는 일도 흔하게 일어납니다. 실정이 이렇다보니 의료계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하는 목소리가 일반인들에게 전해질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제가 일부 의료계 인사들로부터 눈총도 받지만 글과 강연을 통해 이런 책들을 통해 깨달은 내용들을 부지런히 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메디컬 분야 공부를 하면서 느낀 점들이 많다. 특히 생명을 다루는 의료 분야에서는 '세컨드 오피니언(second opinion:2차소견)'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의사들에게는 환자를 다루는 확대된 시야를 갖게 해주기에 필요하고, 환자들에게는 약과 의사에 대한 맹신을 벗고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지혜를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메디컬 공부를 제법 한다고 하는 나도 한동안 지방(fat)을 극도로 기피했다. 저지방 식품이 곧 건강식품이고, 지방은 무조건 건강에 안 좋다는 고정관념에 갇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지방의 누명'이란 다큐를 보면서 생각이 흔들렸다. 좋은 지방을 맘껏 섭취하고 탄수화물을 줄여 다이어트도 성공하고 건강을 극적으로 회복한 실례들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저탄고지'(탄수화물을 줄이고 지방 섭취를 늘이는 식이요법)에 관심을 가졌고, 관련 서적들을 읽으며 나름대로 확신을 갖게 됐다. 지금은 탄수화물을 거의 안 먹고, 대신 올리브유, 코코넛오일 등을 간식처럼 '맛있게' 먹게 됐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식생활 패턴의 변화다. 세컨드 오피니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건강하지 못한' 식생활을 개선하지 못했을 것이다. 알고 터득하면 바꾸게 된다. 고정관념에 갇혀 세컨드 오피니언을 무시한다면 의사나 환자나 지혜의 확장은 불가능하다. 최상의 의사는 꾸준히 공부를 하며 세컨드 오피니언을 열린 자세로 수용하는 의사다. 그런 의사는 환자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교과서 지식 만으로 '내가 최고'라는 태도를 보이는 의사라면 피하는 것이 좋다. 환자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할 가능성이 적다고 보기 때문이다. 건강 칼럼을 쓰고 강연하는 이유는 하나다. 의료를 공부한 언론인의 입장에서 납득이 갈 만한 '세컨드 오피니언'을 널리 알려 좋은 의사, 현명한 환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원영 / 논설실장

2018-03-27

[진맥 세상] 치매, 길이 있다

수필가 성민희씨가 얼마 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난데없는 어머니의 교통사고는 나의 일상을 뒤죽박죽으로 차단시켰다. 92세 어머니가 침대에 누워서 하시는 말. '야~들아, 이제 생각해보니 성공한 인생이란 별거 아니다. 돈도 명예도 아니고…건강이다.'…내 일상의 시간 배정 우선 순위를 다시 정리해야겠다." 돈도, 명예도, 외모도 늙어서는 다들 비슷해지고 오직 '건강 차별화'만 남으니 건강한 노년을 성공한 인생이라 부르는 데 이의가 별로 없겠다. 자기만은 꼭 피해갔으면 하는 질환이 있다면 알츠하이머로 대표되는 치매가 아닐까. 인간의 존엄성을 서서히 잃어가는 치매 환자를 가족으로 두고 있다는 것은 견디기 힘들다. 인생의 아름다운 추억들, 관계의 정을 지워버리고 맞이하는 죽음 앞에서 가족들의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65세 이상 미국인 9명 중 한 명꼴로 치매에 걸리는 현실에서 더욱 암담한 것은 지금까지 효과적인 치매 치료제는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많은 제약회사들은 치료제 개발에 몰두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한국 가천대 서유헌 뇌과학연구원장은 "그동안 연구 결과 다수의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해 치매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 원인에 집중된 치료제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알츠하이머의 종말(The End of Alzheimer's)'. 이런 제목의 책을 보았다면 아마도 십중팔구 과장된, 실효성이 없는 내용일 것이라고 일축하지 않을까. 저자는 30여 년간 치매 예방과 치료법을 연구해온 전 UCLA 교수이자 뇌질환 전문 '벅 연구소(Buck Institute) 연구원인 데일 브레드슨(Dale Bredsen) 박사. 그는 지난해 영양, 스트레스, 호르몬, 수면 등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치매를 예방하고 인지기능을 개선시키는 프로그램 '리코드(ReCODE)'를 발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책에는 치매를 유발시키는 36가지 원인과 이를 제거하는 생활습관을 통해 인지 기능을 회복한 치유 사례들을 상세하게 보고하고 있다. 만성염증 원인제거, 필요한 영양, 독소 예방 및 제거로 압축되는 그의 리코드 프로그램에 대해 '치료=약'의 고정관념에 갇힌 의료계는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치매 초기진단을 받은 한 의사는 "치료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다가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리코드를 실천했다. 상태는 호전됐고 3년이 지났지만 악화되지 않았다. 이 의사는 지금 자신의 환자에게 리코드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다. 어떤 신경학자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치료는 믿을 수 없다"며 수용을 거부했다. 브레드슨 박사는 이같은 회의론에 대해 "불행하게도 의사들은 약 하나로 급성병을 치료하는 방식으로 만성병을 치료하려 한다. 만성병 치료 과정은 체스 전략을 짜는 것과 비슷하다"고 약물치료의 맹점을 비판한다. 약물로 치매를 치료한다는 것은 지붕에 36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중 하나의 구멍을 막으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치료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책은 결국 다른 만성병과 마찬가지로 (식)생활습관 개선 만이 유일한 예방책이자, 치료법이라고 강조한다. 주요 내용을 추려보면 만성염증과 장 누수(leaky gut)를 부르는 설탕, 탄수화물(글루텐), 나쁜지방, 유제품 등을 줄이고, 유기농 식단으로 각종 살충제 등 독소를 차단하며, 가공식품을 멀리하고, 세포의 미토콘드리아를 파괴하는 항생제를 비롯, 뇌세포를 줄이는 콜레스테롤·고혈압 약 등 각종 약물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표지에 '뇌가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읽어야 한다'는 부제가 결코 허풍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벅 연구소 http://www.buckinstitute.org 이원영 / 논설실장·한의학 박사

2018-03-20

[진맥 세상] 한반도 병리학

현대의학이 발전했지만 인류를 질병에서 구원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현대병이라고 일컫는 대사질환은 갈수록 늘어나고, 환자들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건강할 때는 실감하지 못하지만 만성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은 건강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병원을 전전하고, 이런저런 약을 먹어 보아도 몸이 온전하게 돌아오지 못해 절망감에 갇힌 이들이 많다. 특히 의사와 약이 내 몸을 언젠가는 낫게 해줄 것이라는 '맹신'에 사로잡힌 이들일수록 병에서 헤어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진다. A는 만성 위산과다에 시달렸다. 수시로 위산이 역류하고, 대변은 언제나 설사에 가까울 정도로 좋지 않았다. 의사는 항생제, 제산제 등을 처방했다. 잠깐 호전되는가 싶더니 점점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한의원도 찾았다. 비위가 허해서 오는 증상이니 이를 튼실하게 해주는 한약을 먹으면 좋아질 것이라 했다. 먹는 동안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역시 별 차도 는 없었다.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아 관련 서적를 즐겨 읽던 A는 '만병의 원인은 먹는 데서 비롯되고, 먹는 것으로 고칠 수 있다'는 메시지에 주목했다. 먹는 것을 바꾼다고 병이 고쳐질까, 반신반의하던 A는 속는 셈 치고 책에서 시키는 대로 식단을 변화시켰다. A는 지금 극적으로 달라진 자신의 몸에 감탄하며 그동안 병원과 약을 전전하던 어리석음을 후회하고 있다. A가 위장질환을 앓던 이유는 잘못된 식생활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약만 먹어댔으니 나을 수 없던 것은 당연지사. 만성병이 잘 낫지 않는 이유는 뭘까. A의 경우처럼 원인을 찾지 않고 오로지 증상을 '적'으로 간주해 이를 없애버리려는 치료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증상을 만들어내는 '주적' 원인은 따로 있는데 증상만 공격하니 이겨낼 수 없고, 오히려 엉뚱한 데 군사력을 집중하다 보니 정작 적군이 세력을 키울 시간만 벌어주는 꼴이다. 증상을 적으로 여겨 이를 섬멸하려는 '공격적' 치료방식으로는 질병의 근원적 치료가 불가능하다. 몸에 나타나는 증상은 잘못된 식생활에 대한 '경고' 신호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신호를 고맙게 여기고, 몸을 어렵게 만든 원인을 수정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거꾸로 그 경고를 박살내려 하는 치료행위가 횡행하고 있다. 그런 치료로는 몸과의 진정한 화해는 불가능하다. 한반도 분단으로 인한 질병이 70년 넘도록 치유되지 않고 있다. 치유는커녕 갈수록 만성병이 고질화되어 회복 불가능한 지경으로 치달아 왔다. 한 강토에서 한 민족으로 살았던 역사도, 남과 북이 왜 분단되었는지에 대한 성찰도 잊은 채 남과 북은 서로를 적으로, 원수로 여기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질병(증상)을 적으로 여겨 없애버리려는 치료가 환자에게 온전한 건강을 되돌려 줄 수 없듯이 남과 북이, 북과 미국이 상대를 소멸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역사가 지속되는 한 한반도 질병의 치유는 불가능하다. 원인을 찾지 못하고 겉의 증세만 없애려니 병은 만성이 되어버렸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핵전쟁의 먹구름이 짙던 한반도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4월 남북정상회담, 5월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예상치 못한 전기가 마련됐다. 대화를 한다는 것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전제 하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상대를 악마화하고 섬멸의 대상으로 간주한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은 크게 반가운 일이다. 질병의 회복은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그것을 없애려는 노력에 달려 있듯, 한반도 질병의 치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번 역사적 만남이 한반도 건강 회복에 전환기적인 사건이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원영 / 논설실장

2018-03-13

[진맥 세상] 정치권 '디톡스' 때가 왔다

병에 걸리는 이유는 많다. 바이러스나 세균처럼 구체적인 경우는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다. 그러나 각종 성인병을 비롯한 현대인의 만성병은 정확한 원인을 잡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원인이 복합적이고, 장기적으로 축적된 것이어서 쉽게 고치지도 못하고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린다. 만성병을 부르는 각종 원인을 한 단어로 축약한다면 몸 안에 쌓이는 '독소(Toxin)'라 할 수 있다. 독소가 쌓이면 서서히 병들어가고, 독소 섭취를 줄이고 내보내면 몸은 낫는다. 문제는 독소라는 것이 대부분 '예쁘게' 위장되어 있어 사람들이 그 흉악성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또한 독소는 갑자기 탈 나게 하지 않고 서서히 쌓이면서 몸에 각종 '고장'을 불러오기 때문에 병의 직접적인 원흉으로 지목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몸에 스며든 독소엔 눈길을 돌리지 않고 나타난 증상만 없애겠다며 병원에 달려가고 약을 먹는 '치료'가 반복되고 있다. 만성병이 잘 낫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면 인체를 위협하는 독소란 무엇일까. 사실 현대물질문명 사회에서는 사람을 둘러싼 오만가지가 다 독소다. 자연을 파괴하고, 자연에서 멀어진 현대인의 생활은 그만큼 '비자연적'이다. 자연에서 멀어진 그 공간만큼 독소들이 들어차 있다. 숨으로 섭취하는 오염된 대기, 항생제·성장촉진제 등으로 키운 사육동물, 오염된 토양과 각종 살충제 속에서 자란 채소·과일류, 각종 화학첨가제 범벅인 제조식품들, 생존경쟁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 병 고치겠다며 먹는 각종 약품들, 석유화학 성분으로 만들어내는 싸구려 건강보조제들…. 현대인들은 이런 생활 속 독소에서 하루도 자유로울 날이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 몸은 독소를 정화하고 걸러내는 자연치유력을 갖고 있다. 먹고, 호흡하면서 체내로 들어온 독소들은 면역력과 방어력이 물리치며 몸을 지켜낸다. 땀과 호흡, 대소변 혹은 구토 등을 통해 독소를 몸밖으로 배출하기 위해 몸은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은 병에 걸리고 어떤 이는 건강할까. 몸이 독소와의 전쟁에 쓰는 군사력(에너지)은 무한정 있는 것이 아니다. 독소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해독능력이 고갈되어 가면 자동차가 녹슬고 고장나듯 몸은 서서히 병들어간다. 그러나 평소 독소 유입을 줄이고 이미 들어온 독소를 해독하는 생활습관을 실천한다면 건강해지고, 만성병에 걸릴 위험도 없앨 수 있다. 세포들이 모여 사는 몸의 세계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나 병드는 이치는 다를 게 없다. 사회가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독 작용을 하는 것이 법과 제도와 도덕이다. 이런 정화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서서히 골병들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독소가 가장 많은 집단을 꼽자면 단연 정치권이 아닐까. 알량한 권세로 법과 도덕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요, 온갖 부정부패의 온상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한국의 '미투 운동'에 대해 글을 쓰면서 '한 방에 훅 갈 것 같아 요즘 두 발 편히 뻗고 잠들지 못하는 소위 잘난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예언(?)한 것은 실은 정치권을 겨냥한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던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한 방에 훅 갔다. 이참에 성폭력 문제뿐 아니라, 온갖 불법·비리·몰인격 등 정치권 전반에 걸쳐 세정 의례가 치러지는 기폭제가 되어야 한다. 독소로 가득 찬 정치권은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죽든 살든 이제는 극약 처방이나 수술대에 눕혀 메스를 들이대야 한다. 정치가 해독(Detox) 되어야 사회 전반이 건강해지고 국민이 행복해질 것이기에. 이원영 / 논설실장

2018-03-06

[진맥 세상] 한국 '미투'의 역사적 의미

요즈음 한국에서는 소위 '잘난 인물'들 중에 두 발 편히 뻗고 잠을 잘 수 없는 이들이 많으리라. 이러다가 나도 한방에 '훅' 가는 건 아닐까, 만약에 터진다면 어떻게 대처할까, 머릿속이 무척이나 복잡하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평생 쌓은 명성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사태를 매일 접하고 있으니 말이다. 요원의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한국의 '미투(Me Too)' 운동 탓이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이 운동이 응원하고 공감한다는 '위드유(With You)' 메시지와 함께 한국사회를 달구고 있다. 여검사 서지현씨의 용기 있는 폭로로 촉발된 미투운동은 이미 검찰 내 만연한 성폭력 문화를 수면 위로 올렸고, 떵떵거리던 가해 당사자는 한국땅에서 더 이상 얼굴 내놓고 살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이어진 성폭력 피해 폭로로 문화공연계, 대학가, 종교계의 권력형 성폭력 문화가 속속들이 까발겨지고 있는 중이다. 이전에도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발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가해자들의 부인, 소속 기관 및 회사의 입막음, 솜방망이식 처벌, 피해자에 대한 왕따 및 무고 소송, 피해자 퇴직, 가해자의 재등장, 언론의 무관심 등으로 이어져왔다. 용기를 내 피해를 폭로했지만 피해자만 고통을 안고 흐지부지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젠 정말 달라졌다. 웬만한 이슈는 찬반으로 갈려 극심한 여론싸움을 벌이는 게 일상인 한국에서 미투운동처럼 거의 전국민의 전폭적인 응원을 받고 있는 건 역사적으로도 이례적인 사건이다. 누군가가 말했듯 한국의 미투운동은 일시적인 '폭로 이벤트'의 수준을 넘어 한국 인권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다. 며칠 전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성인 남녀 1000여 명을 대상으로 견해를 물은 결과 88.6%가 미투운동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73.1%가 미투운동을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답했고, 한국사회에 성폭력 문화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94%에 달해 이 문제가 전 국민의 공감을 받고 있음을 보여줬다. 또한 성폭력은 권력이나 상하관계에서 발생한다는 응답이 96%에 달해 사람관계를 수평이 아닌 갑을·수직관계로 설정하는 한국적 문화가 성폭력 발생의 토양임을 보여줬다. 미투운동이 국민적 공감을 받고,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잘못된 관행을 이참에 뿌리 뽑겠다는 의지가 결연하게 나타나고 있는 데는 바뀌어진 정치적 토양도 한몫하고 있다고 본다. 새 정부 들어 각 분야에 걸쳐 이뤄지고 있는 '적폐청산' 작업이 없었다면 과연 미투운동이 지금과 같은 탄력을 받을 수 있었을까. 소속 의원들의 온갖 성추문으로 '성누리당'이라는 오명을 얻었던 새누리당이 아직까지 집권하고 있었다면 이같은 미투운동의 동력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지금 한국의 미투운동은 비뚤어진 남성우월적 성문화를 바로잡는 또 하나의 적폐청산 작업의 하나다. 한국의 미투운동이 또 하나의 냄비근성으로 끝나서는 안될 일이다. 특히 권력·상하 관계를 악용해 마치 그것이 특권인 양 여성을 성적 희롱물로 삼아온 수많은 남성들에게 경종이 되어야 한다. 이를 계기로 한국사회가 한 단계 성숙한다면 미투운동은 역사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검사의 성추행 피해 사건을 접하고 설득 끝에 피해 당사자인 서지현 검사를 스튜디오에 불러내 인터뷰를 진행했던 JTBC의 '촉'이 없었다면 그 사건은 한낱 검찰 내 잡음으로 끝났을 지, 미투운동이 한참 연기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유명 인물이 한 방에 '훅' 가도 동정심이 안 가는 요즘이다. (*이원영 논설실장의 자연건강 강연회 겸 칼럼집 '진맥세상' 출판 사인회가 3월 1일(목) 오후 2시 부에나파크 더소스몰 사무동 4층 중앙문화센터, 14일(수) 오후 7시 LA중앙일보 문화센터에서 각각 열립니다.) 이원영 / 논설실장

2018-02-27

[진맥 세상] 늘어나는 뱃살, 쪼그라드는 뇌

살이 찌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상식으로 통한다. 군살을 빼면 각종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기 좋은 체형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으니 '살빼기'는 그야말로 현대인의 숙제 같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살이 찌면 치매 같은 뇌질환의 위험성도 함께 늘어난다면 쉽게 납득이 될까. 그런데 많은 임상 데이터는 비만과 뇌질환의 연관성이 매우 긴밀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비만인 사람들에겐 좀 미안한 말이지만 뚱뚱하면 일반적으로 '미련해 보인다'는 선입견을 많이 받는다. 실제 경험상 그런 것인지, 아니면 비만인 사람들의 행동과 말투가 대체로 민첩하지 않아서 그런 인상을 받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연구 결과를 보면 그것이 단지 빈말은 아닌 것 같다. '살이 찔수록 뇌가 쪼그라들기' 때문이다. 2005년 100여 명을 상대로 허리-엉덩이 비율(복부비만도)과 뇌의 구조적 변화를 비교했다. 분석 결과 복부비만도가 높을수록 뇌의 기억중추인 해마의 크기가 더 작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억 능력은 해마의 크기에 달려 있기 때문에 뱃살이 많아질수록 기억력 감퇴는 물론 뇌졸중 위험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같은 연구는 탄수화물, 특히 밀가루에 많이 들어있는 글루텐(gluten) 성분이 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심도 깊게 다룬 신경과 전문의 데이비드 펄머터의 베스트셀러 '그레인 브레인(Grain Brain)'에 소개되어 있다. 보다 실증적인 연구도 있다. UCLA와 피츠버그대학교의 공동 프로젝트에서 연구진은 치매나 다른 인지능력에 문제가 없는 70대 94명의 뇌영상을 5년 간 추적했다. 분석 결과 비만한 사람들의 뇌는 정상 체중을 가진 그룹보다 16년 늙어보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외에도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에 이뤄졌던 평균 나이 36세의 6500명 검진 기록을 놓고 이들의 30년 후 치매 발병률을 비교했더니 체지방이 많았던 그룹의 치매 위험이 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비만과 뇌기능은 악순환을 반복한다. 비만은 뇌기능 축소를 부르고, 퇴행하는 뇌기능 때문에 운동능력은 더 떨어져 비만은 더 악화된다. 그렇다면 비만은 왜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펄머터 박사는 '대단히 많은 뇌질환이 탄수화물을 너무 많이 먹고 건강한 지방을 너무 적게 먹는 실수에서 비롯된다'고 단언한다. 탄수화물 섭취가 뇌기능에 악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여기서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탄수화물을 과다 섭취하면 인슐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인슐린 저항증) 높은 혈당이 마치 유리파편처럼 혈관 손상을 일으키고 뇌에 플라크라는 이상 단백질(염증)을 형성시킨다. 그래서 대표적인 뇌질환인 알츠하이머(치매)를 '제3의 당뇨병'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당뇨병 환자가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2배 이상 높다는 데서도 추론이 가능하다. 이 책에는 각종 두통, 신경성 질환, ADHD, 우울증, 위장병 등 질병의 원인을 제대로 알 수 없었던 환자들이 단지 탄수화물(특히 글루텐 성분이 든 밀가루 음식)을 줄이고 좋은 지방(올리브유, 코코넛오일, 질 좋은 버터 등)을 섭취하는 방식으로 식사 패턴을 바꾼 것만으로도 증상이 현저하게 사라진 사례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결국 체중을 줄이려면 지방 섭취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에너지 효율이 높은 좋은 지방을 많이 섭취하고 대신 탄수화물을 줄이라는 것이 요체다. 요즘 영양학계에서 많은 설득력을 받고 있는 소위 '저탄(수화물)고지(방)' 식단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탄수화물이 자꾸 당긴다면몸의 '필요'보다는 '중독'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원영 / 논설실장·한의학 박사

2018-02-20

[진맥 세상] "내 탓 아님을 깨닫는 데 8년 걸려"

한국의 현직 여검사가 8년 전 선배 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후 말할 수 없는 심적 고통을 겪었다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JTBC 방송과 인터뷰를 가져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도 이를 문제 삼을 경우 피해자가 제2, 3의 보복 피해를 당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이 여검사의 '미투' 선언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주인공은 창원지검 통영지청에 근무하는 서지현 검사로 2010년 10월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간부 안태근 검사로부터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후 법무부 감찰 라인에서 진상 조사에 들어가려 했으나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던 최교일(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피해자는 가만 있는데 왜 들쑤시냐"며 관계자를 호통쳤다고 한다. 이후 서 검사는 부당한 좌천 등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범행 가해자인 안태근은 우병우 라인으로 승승장구하며 법무부 검찰국장을 지내다 우병우 관련 사건을 담당한 수사팀에 돈봉투를 돌린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두 사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하고 있다. 파렴치범들의 전형적 대응이다. 피해자인 서 검사의 인터뷰를 듣는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서씨는 시종 침착했지만 분노와 울분, 회한이 섞인 그의 감정은 곧 울음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서씨는 성추행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데 고민이 컸다고 한다. 자신의 조직에 누를 끼칠 수 있다는 점, 또다른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등을 놓고 번민을 거듭했다. 그러나 이 말이 꼭 하고 싶어서 나왔다고 했다. "성추행 사건 후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감에서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는 결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는 것을 깨닫는 데 8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용기를 주기 위해 나왔습니다." 피해자인데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자책감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그 마음의 응어리가 어떻게 풀릴 수 있을까. 손석희 앵커는 앵커 브리핑을 통해 "성폭력 범죄의 경우 가해자와 동조자, 혹은 방관자들이 만들어내는 가장 비겁한 방법은 피해자의 수치심과 자책감을 이용하는 것"이라며 "이는 세상 곳곳에서 지극히 평범하고 힘없는 또 다른 서지현들이 당했고, 참으라 강요당하고 있는 부조리"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번 사건을 돌아보면서 한국적 남성중심의 권위주의 문화가 몸에 밴 수많은 한국 남성들이 과연 성폭력 가해자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추행이라는 단어조차 공유되지 못하던 시절, 권력과 금력을 쥔 남자들의 영역에서 수없이 발생했을 서지현 사건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이 아직도 세상의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 채 오히려 피해자가 자책감으로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 이런 부조리한 세상. 그러나 가해자들은 너무도 태연하게 떵떵거리며 사는 세상을 어찌 쉽게 견딜 수 있을까. 서지현 검사는 인터뷰 말미에서 검찰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을지 솔직히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에 많은 네티즌들이 절대로 사표를 내지 말고 더욱 승승장구하라고 격려하고 있다. 한 사람의 용기있는 여성으로 인해 수많은 말못할 피해자들이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진다면 서지현 검사는 한국사회의 질적 변화를 위해 큰일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가해자인 안태근은 최근 기독교에 귀의해 "깨끗하고 성실하게 공직생활을 해왔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까지 했다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다. 이원영 / 논설실장

2018-01-30

[진맥 세상] 한반도 '세균' 정치학

#알고 보면 우리 몸은 세균(박테리아) 덩어리다. 인간의 세포 숫자가 70조 개라고 하는데 세균은 그보다 많은 100조 마리가 살고 있다. 그 대부분은 장(소장·대장)에 분포한다. 이를 '장내세균'이라 부른다. 장내세균에는 좋은 역할을 하는 유익균(비피도박테리움·락토바실러스 등)과 못된 역할을 하는 유해균(대장균 등)이 견제와 균형을 통해 공생한다. 장내세균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음식을 체내로 흡수하는 첨병역할을 하기 때문에 장에 면역세포의 70%가 몰려 있다. 그래서 장은 건강의 첨병이라 부른다. 유익균은 영양소를 흡수하고, 면역계를 강화하며, 각종 대사물질을 만들어 생명을 유지하는 일등공신이다. 반면 유해균은 음식을 부패시켜 독소를 만들어내고, 이를 장내로 침투시켜 각종 성인병과 노화의 주범으로 꼽힌다. 유익균은 식이섬유가 많은 채소나 현미, 김치·된장 같은 발효 음식을 좋아한다. 반면 유해균은 가공식품,밀가루 음식, 고기와 지방류가 주식이다. 식생활에 따라 장내세균의 판세가 달라지고 건강과 질병이 갈린다. 그러나 유해균을 잡겠다고 항생제를 투입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유익균까지 대량 살상시키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해균의 내성을 더 길러 수퍼박테리아를 탄생시킨다. 결국 유해균을 절멸시키는 방법은 없다. 아마 있다면 생명도 끝나게 될 것이다. #몸에 깃들어 사는 유익균과 유해균의 관계는 어쩌면 한반도에 숙주 삼은 남한과 북한의 운명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남과 북은 서로 체제(생명)를 유지하는 방식부터 다르다. 남한은 자유와 민주를 지향하는 자본주의를, 북한은 평등과 계획경제 중심의 사회주의를 먹고 산다. 서로가 우월성을 내세우며 적대시하고 있지만 상대방을 멸절시키려다간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도 공유하고 있다. 만약에 장내세균이 '공존'을 포기하고 편을 갈라 죽기살기로 전쟁을 벌인다면 몸(한반도)은 어떻게 될까. #그래서 하나로 만들려는 통일보다는 평화 공존이 우선이다. 전쟁을 부를 수도 있는 첨예한 갈등을 씻어내고 화해·협력·교류가 먼저다. 지긋지긋한 남북 대립·마찰·긴장의 기다란 터널을 뚫고 한반도에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계기다. 여자하키 남북단일팀 구성, 북한예술단 공연, 당국자 회담 등 막혔던 동맥에 피가 흐르듯 한반도 병세가 회복되고 있다. 물론 경계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부 보수 정치인들은 남북단일팀, 한반도기 사용을 반대하고 있다. 극우 인사들은 한국의 공연시설을 점검하러 온 북한 대표단을 맞아 환영은커녕 인공기와 김정은 초상화를 불지르는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북한의 핵무기로 대북 증오심이 한층 높아진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평화 없는 세상에서 항시 전쟁 위기감을 안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북한이 유해균처럼 나쁘다 해도 항생제를 들이부어 소멸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동안 수없는 제재·압박이라는 항생제는 결국 핵무기라는 수퍼박테리아를 만들어내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닐까. 중국과 대만이 '통일'을 내세울 땐 전쟁 위기를 벗어날 수 없었지만 통일이라는 말을 접고 교류·협력만 하자고 하여 지금은 양국을 오가는 비행기가 일주일에 800여 편에 달한다. 남과 북이 중국·대만 관계처럼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기 위해선 예민한 문제보다 교류·협력이 먼저다. 그 결실이 북미대화로 이어지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담보하는 초석이 놓여지는 역사적 분기점이 지금이었으면 한다. 남북은 한걸음씩 양보하며 어렵게 맞이한 대화 국면을 그르치지 않길 바란다. 건강은 세균의 '박멸'이 아니라 '공존'에서 온다. 이원영 / 논설실장

2018-01-23

[진맥 세상] 어떤 영양제를 먹을까

건강 칼럼을 쓰고 강연을 하다보면 꼭 받는 질문이 있다. 비타민 등 건강보조식품은 먹어도 되나요, 하는 것이다. 탐식적인 현대인의 식생활 패턴으로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기 힘들고, 영양이 부족하면 이런저런 탈이 날까봐 그런 염려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돈을 들여 사먹기는 하는데 이것이 몸에 좋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냥 기분만 좋게하는 소위 '플라시보' 효과만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몸을 더 안좋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대부분 확신이 서질 않는다. 그저 뭐가 뭐가 좋다더라는 말을 믿고 영양제 시장을 노크한다. 미국인만 해도 3분의 2 이상이 비타민 영양제를 먹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식재료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영양보충제에 대한 관심은 날로 커져가고 시장은 팽창일로다. '천연 vs 합성 똑소리 나는 비타민 선택법'(원제:Supplements Exposed)이라는 책은 소위 영양제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비영리단체 히포크라테스 건강연구소를 운영하는 브라이언 클레멘트 박사의 역저다. 그는 40여 년 간 영양학과 자연의학을 연구하며 수만 명의 임상 실험을 거쳐 건강보조제에 관한 저술과 강연활동을 해오고 있는 이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다. 책의 요지를 딱 한마디로 표현하면 '한 알을 먹더라도 진짜 자연제품을 먹어라'다. 영양소의 화학성분만 추출해 석유화학제품으로 만든 인공합성 영양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읽으며 밑줄 친 주요 부분을 소개하면 이렇다. # 현재 전 세계에서 생산하는 비타민C 보충제의 90%가 합성화학 제품이고, 대부분 중국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 현행법상 비타민 보충제는 실제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을 10%만 함유해도 '천연(Natural)'으로 표기할 수 있다. # 당근과 토마토에서 베타카로틴은 항상 알파카로틴과 감마카로틴과 함께 시너지를 내는데 합성물질 베타카로틴은 아세틸렌 가스를 이용해 베타카로틴 분자구조가 동일한 물질을 만든 것이다. 합성비타민은 대부분 화학물질로 만든다. #우리 몸은 생물학적으로 자연이 만든 물질만을 진짜 영양소로 인식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기에 천연영양소는 쉽게 흡수하지만 일부 분자만 추출한 영양소나 합성영양제는 흡수를 도와줄 보조 인자를 결정할 때까지 흡수하지 않는다. 심지어 화학제로 만든 합성보충제는 이물질로 인식돼 면역력을 약화시켜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연이 만든 식품 속에는 화학자가 분석할 수 없는 4가지 요소, 즉 호르몬·산소성분·식물성 화학물질(phytochemical)·효소(enzyme)가 있는데 이는 세포의 기능에 필수적이지만 합성화학영양제에는 이 성분이 결여되어 있다. #20년 동안 1만 1000여 명의 혈액을 분석했더니 합성영양제는 거의 흡수되지 않고 혈액 속에 남아 있었다. 천연비타민에 들어있는 보조 인자들이 없어 우리 몸은 이를 오염물질로 인식해 배출한다. 이동식 화장실을 청소하다 보면 바닥에 수많은 비타민과 무기질 알약이 발견되는 것이 한 증례다. #물고기가 죽으면 생선기름은 즉시 산패되기 때문에 오메가-3 재료로는 부적합하다. 생선기름 영양제 제조업자들은 생선을 여과한 뒤 방부제와 항산화제를 첨가한다. 그리고 산패한 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캡슐에 넣는다. 이런 제품은 오히려 질병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 책에는 합성영양제를 멀리하고 천연영양제를 잘 골라 섭취하라는 내용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다. 마켓마다 소위 '영양제'라는 예쁜 옷을 입고 고객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합성영양제를 마주할 때 이제는 제약회사의 주머니만 불려주는 어리석은 소비자가 되지 않겠다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겠나. 한의학 박사 이원영 / 논설실장·한의학 박사

2018-01-16

[진맥 세상] 콜레스테롤 약, 그 위대한 미신

2016년 5월 '전원일기'로 널리 알려진 배우 이수나가 쓰러져 혼수상태라는 뉴스가 나왔다. 당시 언론들의 보도는 이랬다. "이수나는 고혈압 등 여러 가지 약을 복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의식 불명의 원인이 고혈압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수나는 고혈압으로 쓰러졌지, '고혈압약'의 부작용 가능성을 언급한 언론은 없었다. 중풍 건수의 13%가 뇌출혈이고 85%가 혈압이 낮아 뇌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이며, 혈압약이 뇌경색의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런 무책임한 기사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근 50대 중반인 한 친구가 다리를 절고 있다. 허벅지 근육이 빠져 제대로 걷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른단다. 직감으로 물었다. "약 장기복용하는 거 있지?" 콜레스테롤 약을 수년째 먹고 있다고 했다. 콜레스테롤은 세포와 세포막을 구성하는,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성분인데 이를 약으로 없애니 얼마나 부작용이 많겠나. 근육이 녹는 횡문근융해증(rhabdomyoysis)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설명해줬다. 뇌세포도 녹이니 치매와 파킨슨병의 원인도 된다. 위의 사례들은 약 부작용에 대한 우리들의 무신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혈압약 부작용에 대해선 몇차례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번엔 콜레스테롤 약에 대한 정보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영양학자 조니 보든 박사와 심장전문의 스티븐 시나트라 박사가 쓴 '의사가 말하지 않는 콜레스테롤의 숨겨진 진실-콜레스테롤 수치에 속지 마라(원제:The Great Cholesterol Myth)에 나오는 내용이다. #200년 전 피를 뽑는 치료법을 맹신했던 의사들은 거머리를 몇 마리 사용해야 하는지, 어디서 피를 뽑아야 효과적인지를 놓고 온갖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인후염에 걸렸을 때 주치의 역시 그의 피를 2리터 가량 뽑아내 목숨을 잃게 했다. 오늘날에도 수천, 수만 명의 의사들이 집단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질병'을 위험하게 치료한다. 그 존재하지 않는 질병은 '체내 콜레스테롤 증가'다. #콜레스테롤에 대한 집단적 오해는 65년 전 안셀 키즈 박사의 '포화지방이 콜레스테롤을 늘리고 이는 심장질환으로 이어진다'는 '지질가설'에서 비롯됐는데 이 가설을 사실로 바꿀 만한 근거는 아직 없다. 밴더빌트 대학 생화학자 조지 만 박사는 콜레스테롤을 심장질환의 지표로 보는 가설은 미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사상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말했다. #콜레스테롤은 세포와 세포막, 뇌세포를 이루는 물질로 생명유지에 꼭 필요하다. 또한 각종 호르몬으로 바뀌어 인체의 대사활동에 필수적이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보다 수명이 길었다. #콜레스테롤 저하제인 스타틴계 약물의 순기능은 거의 없으며 부작용은 엄청 나다. 근육 약화, 인지 능력 하락, 심장 기능에 중요한 코엔자임Q10 고갈, 성기능 약화, 암 및 당뇨 위험 증가 등 수많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듯 많은 부작용을 의사들로부터 왜 쉽게 들을 수 없을까. 의학박사 비어트리스 골롬 박사는 환자가 보고하는 부작용을 의사들이 어떻게 처리하는지 파악했다. 연구에 참여한 환자들은 근육통, 기억력 상실 등의 증상을 138명의 의사에게 보고했는데 65% 내외의 의사들이 약물 관련성을 무시했다. 약품의 유해 사례를 보고하는 미국식품의약국(FDA)의 '메드와치'에도 보고하지 않았다. 저자들은 의사들을 직접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의사 대부분이 '부작용이 심각한 수준으로 축소 보고된다'고 인정했다. 이 책에는 '심장병 전력이 있는 중년' 이외에는 콜레스테롤 약을 먹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 차고 넘친다. 올해 건강하게 지내려면 의사 말만 맹종 말고 이런 책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의학 박사 이원영 / 논설실장·한의학 박사

2018-01-09

[진맥 세상] 자기 수명 결심하기

결심을 하는 계절이다. 건강을 위하여, 돈을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여러 이유들이 결심의 배경이 된다. 아마도 새해 첫날을 기해 남은 담배와 라이터를 쓰레기통에 집어 던진 사람들, 무척 많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결심들은 1년이 되기 전에 성공과 실패의 가닥이 잡힌다. 성공하면 스스로에게 큰 자존감을 주겠지만 실패하면 자괴심도 든다. 결심은 성공하는 예보다는 깨지는 게 다반사다. 그래서 후회하고 또다시 결심하고 하는 게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그런데 이런 건 어떨까. 결심하는 것 자체가 흐뭇하고, 1년 안에 금세 실패와 성공의 판가름이 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성공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그런 결심 말이다. 실제로 그런 결심을 세운 사람이 있다. 현대단학과 뇌호흡 명상법을 개발한 한국뇌과학연구원 이승헌(68) 원장이다. 영성가 답게 그는 수많은 자아계발 서적을 집필했는데 이번엔 '나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는 제목의 책을 냈다. 책 제목을 보았을 때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솔직히 '그렇게 오래 살아서 뭐 할려구…' 하는 생각도 든 게 사실이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며 이 원장 개인이 왜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니 '120세 살기'는 허튼 결심이 아님을 알게 됐다. 그는 80살까지는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고 그 이후는 삶의 마무리를 잘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다가 102세가 된 이종진이라는 분과 골프를 함께 친 사건(?) 이후로 수명에 대한 생각이 확 달라졌다. 이종진 옹은 카트도 타지 않고 4마일 코스를 모두 걸었다.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산책을 빠뜨리지 않는다고 했다. 골프 회동 이후 이 원장은 '나도 혹시 100살까지 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는 하프 마라톤인 줄 알고 열심히 골인 지점으로 달려왔는데 사실은 풀마라톤임을 알게된 것과 같은 당혹감을 느끼게 했다. 그는 나이에 대한 성찰을 거쳐 수명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시간이라는 적극적인 생각으로 바꾸기 시작했고, 80세 이후 계획이 전무했지만 120세까지 수명을 설계한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120세 수명에서 그의 지금 나이는 아직 청춘이니까! 120세는 대충 나온 숫자가 아니라 대다수 동물들이 성장 기간의 여섯 배까지 살 수 있는 점과 현대의 수명 연장 트렌드를 감안해 과학계가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미래 수명이다. 또한 장수국가 일본에서 유행한 말이지만 자기 나이에 0.7을 곱한 것이 실제 체감 나이라는 말도 있다. 예를 들어 60살이면 예전의 42살 정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장수시대가 도래한 것인데 그걸로 치면 미래의 120세는 지금이 84세에 해당하는 셈이니 얼추 맞아 떨어진다. 산은 높이 올라갈수록 시야가 넓어지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수명도 소극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도적으로 설정하면 앞으로 해야할 일의 종류와 범위도 극적으로 달라질 것 같다. 이승헌 원장은 수명을 80정도로 생각했을 때는 단기간의 계획에 치중하고 중장기적인 비전을 품지 못했지만 120세까지 살기로 결심한 다음에는 뉴질랜드 어스 빌리지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것 등 비전과 꿈의 확장을 경험하고 있다. 또한 수명에 대한 생각만 바꾼 것 뿐인데 그것이 30년은 더 젊어진 것 같은 회춘 효과를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꼭 120살까지 설정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건강관리만 잘 하면 100세 시대는 현실이 된 시대다. 몇살까지 살 것인가 결심하는 것만으로도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있음을 자각하고 보다 생산적인 삶을 계획하지 않을까. 이원영/논설실장

2018-01-02

[진맥 세상] 나를 진맥하다

한의학 공부한 것을 계기로 건강 이론과 사회 이슈, 또는 인생이란 문제를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 겉만 다스리는 대증 치료에서 벗어나 참건강을 찾는 길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 끝에 '진맥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칼럼을 써왔습니다. 진맥은 병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건강을 해치는 이면은 무엇인지, 사회를 골병들게 하는 이면은 무엇인지, 남북화해를 가로막는 이면은 무엇인지 짚어 왔습니다.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의 '병'을 진맥하고 처방한 셈입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나를 진맥한 적은 없었습니다. 나를 곪게 했지만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올해를 끝으로 도려내야할 악성 종양은 무엇인지 스스로 진맥하려 합니다. 내년부터는 '바빠'라는 단어를 잊으려 합니다. 올해도 바쁘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바쁘다는 핑계를 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건진 것은 무엇인지 내 손에는 별로 남은 게 없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룬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나중에, 나중에 하면서 결국은 만나지도 못한 사람이 숱하게 많습니다. 이번 주말에, 다음 주말에 하면서 결국은 집안 정리 제대로 한번 못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나중에 읽자, 하며 사모은 책이 읽은 책보다 10배는 많은 것 같습니다. 책장을 보며 '죽을 때까지 이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을까' 회의까지 듭니다. 바쁘다는 것은 실제 상황이라기 보다는 마음의 상태인 것 같습니다. 바쁘다는 자기 최면은 시간을 내기 싫다는 핑계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요.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시간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바쁠 게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내가 내뱉은 바쁘다는 말에 상대방이 느꼈을 소외감이나 섭섭함을 생각하면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내년부터는 죽었다 깨어나도 바쁘다는 소리를 안 할 작정입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못한 것이 너무 많은 올해가 원망스럽습니다. '난 몰라'라는 말도 버리려 합니다. 모른다, 관심 없다는 말은 참으로 편리한 말입니다. 그 한마디만 하면 나는 완전히 분리되어 홀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편리성 때문에 숱하게도 모른다, 관심 없다를 남발한 것 같습니다. 잠깐은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런 단절의 욕구 때문에 나는 하나도 성장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모른다, 관심 없다며 선을 긋는 바람에 나의 뇌는 지식의 습득을 멈추고 정지되어 버렸습니다. 나의 무관심 때문에 또한 상처 받았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미안할 따름입니다. 내년부터는 모르면 알려고 노력하고, 관심이 없다면 눈을 더 크게 뜨고 귀를 더 열어 관심을 가지려 합니다. 그것이 커뮤니티로 살아가는 인간의 도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못한다'는 말도 입밖으로 꺼내지 않을 작정입니다. 사실 올해도 못한다고 했다가 해보니까 의외로 쉽게 되는 일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수년째 삐걱거리는 욕실 여닫이 문을 단돈 2달러 들여 작은 도르레 하나 바꿔 고쳤습니다. 고장난 싱크대 음식분쇄기도 직접 해보니 교체할 수 있었습니다. 수년째 망설였던 칼럼집 발간도 왈칵 저질러보니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엄두를 내지 못 하던 것들이었지만 막상 소매를 걷어붙이니 불가능해 보인 것들이 가능의 대상으로 바뀌었습니다. 고 정주영 회장의 "하기는 해봤어?"란 명언이 떠오릅니다. 포기하지 않을 거라면 못한다 하기 전에 일단 해보려합니다. 할까말까 하는 것에 대해선 절대 못한다는 말을 꺼내지 않을 작정입니다. 바빠, 몰라, 못해 이 세마디 올해의 종양을 잘라내고 새해에는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뵙겠습니다. 이원영 / 논설실장·한의학 박사

2017-12-27

[진맥 세상] 암 치료는 왜 획일화 되었나

타이 볼링거(Ty Bollinger)의 직업은 공인회계사지만 지금은 자연건강 연구가 및 저술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가 건강 전문가로 유명세를 얻게 된 데는 슬픈 가족사가 있다. 지난 1996년 아버지가 위암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난 것을 시작으로 이후 8년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 사촌, 삼촌, 어머니 등 무려 7명의 가족을 암 치료 과정에서 잃은 것이다. 볼링거의 가족들은 현대의학이 제공하는 암 치료법인 수술.방사선.화학요법 등을 두루 받았지만 살아나지 못했다. 볼링거는 이후 기존 암 치료법에 회의를 품고 이를 대체할 치료법과 의료 산업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지난 20년 간 수많은 전문서적을 섭렵하고 국내외 의료계 종사자 및 소생 환자들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물인 저서 '암 자연치유 백과(Cancer: Step outside the Box)'와 '암의 진실(The Truth about Cancer)'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또한 세계 곳곳을 누비며 대체치료의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유튜브에서 엄청난 반응을 얻고 있다. "내가 알아낸 사실들은 충격 그 자체였다. 수많은 대체요법이 암 치료에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 말기암 판정을 받은 수천 명의 환자들이 건강을 되찾았다는 것, 주류 의료계가 이런 치료법을 탄압해온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체 치료법이 널리 활용되었더라면 나의 부모들이 살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면 서글플 따름이다." 볼링거는 의사들 자신들도 기피하는 암 치료법을 환자들에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2014년 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을 통해 공개된 조사에 따르면 1000여 명의 암 전문의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본인이 암에 걸리면 화학요법을 받지 않겠다고 답한 비율이 88.3%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의사 본인도 거부하는 치료법을 매뉴얼에 따라 환자에게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치료법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볼링거는 1910년 발표된 '플렉스너 보고서'에서 뿌리를 찾는다. 이 보고서는 당시 거대 석유재벌이던 록펠러와 철강 재벌 카네기가 의학협회와 손잡고 에이브러햄 플렉스너라는 사람을 고용해 155개 의과대학의 교수법에 대한 평가를 한 것이었다. 목적은 다양한 의료 시스템을 표준화하고 석유에서 추출한 특허받은 약품만을 치료제로 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은 표준 의료 시스템을 따르는 대학들에는 수백만 달러씩 후원했다. 그리고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표준 의료만이 과학적이고 나머지는 없어져야 할 의료로 낙인 찍었다. 보고서 이전엔 다양한 의료 행위가 공존해오던 미국이었지만 보고서 이후 수만 명의 약초 치료사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정골요법사나 동종요법사 등은 돌팔이로 매도되며 '화학약제 처방' 치료 외에는 설자리를 잃고 말았다. 환자를 화학약품으로 치료하는 이러한 독점의료체계의 구축으로 재벌과 제약회사는 막대한 수입을 올리게 된다. 동종요법 의사인 로버트 스콧 벨 박사는 "석유화학계 약물을 이용한 의학교육이 경쟁 상대를 모두 없앰으로써 독점 체제를 탄생시켰다"고 개탄했다. 볼링거는 '암의 진실' 3부에서 화학약품을 쓰지 않고 뚜렷한 치료 효과를 내고 있는 전 세계 대체의학 현장을 소개한다. "병을 어떤 방법으로 치료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개인이 선택할 일이지 선택할 후보를 제한한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자유와 정의를 바탕으로 세워진 미국에서 안전하고 효과적인 진짜 치료를 받기 위해 다른 나라로 가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암 치료법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면 볼링거의 책이나 '암을 고치는 미국 의사들' 같은 책을 참고하면 폭넓은 정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원영/논설실장·한의학 박사

2017-12-19

[진맥 세상] 또 하나의 은퇴 전략 '요리'

악역 배우로 잘 알려진 최준용(51)씨는 17년 전 이혼하고 부모집에 얹혀 살고 있다. 평생 요리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지라 아직도 73세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아버지와 함께 얻어 먹고 있는 신세다. 어머니는 자식과 남편이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내가 천년 만년 살 것도 아니고 몸도 움직이는 종합병원인데…남자들도 요리에 취미를 붙이면 재미있을 텐데…." 어느날 최씨는 부모님께 깜짝 선물을 선사하리라 마음먹는다. 그가 직접 만든 요리를 부모님께 대접하는 것이었다. 음식재료 구입부터 요리 순서까지 전문 요리사의 지도를 받았다. 그래서 내놓은 첫 요리가 전복과 낙지를 넣어 만든 '전복영양솥밥'. 부모는 깜짝 놀라며 "너무 맛있다" "앞으로도 자주 해다오"를 연발한다. 어머니는 "평생 처음 아들이 해준 밥을 먹으니 너무나 행복하다"고 웃음을 그치지 않는다. 요리를 해서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는 셰프의 마음을 최씨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다양한 술안주 요리로 친구들을 놀라게 하는 수준이 됐다. MBC 다큐 '남자, 요리와 사랑에 빠지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요리를 시도하기 전, 친구들로부터 '집안이 편의점'이라는 조롱을 들을 정도로 온갖 1회용 식품들을 애용했던 최씨가 '요리로 행복해질 수도 있구나'로 변화하는 과정은 불과 한 달 정도다. 사실 요리는 매우 이타적인 행위다. 요리사는 자신이 맛있게 먹겠다는 마음보다 다른 사람이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더 앞선다. 어머니들이 식구들을 먹인다는 동기 없이 혼자 밥을 먹는다면 '밥에 물 말아 김치 얹어 먹는' 걸로 때우기 다반사일 것이다. 요리는 내 수고를 통해 타인이 행복해하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행위이기 때문에 사심과 이기심이 자리를 틀 여지가 없다. 결혼을 하지 않은 후배들에게 가끔 해주는 얘기가 있다.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면 실패할 확률이 적을 것이라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 즐기며 자기 혀를 충족시키려는 미식가보다는 음식을 만들어 남의 혀를 즐겁게 해주려는 심성이 훨씬 배려심이 많을 것이라고. 요리가 좋은 또 하나는 '창조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여러가지 원재료를 이용해 그럴 듯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예술의 창작 과정과 비슷하다. 사극 '대장금'에서 한상궁이 장금에게 요리를 가르칠 때 "요리는 만드는 것이 아니고 (머릿속에서) 그리는 것이다"고 한 말은 요리가 창작임을 선명하게 설명한 것이다.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면 요리에 사용하는 주방기구는 물론이고, 음식을 담을 그릇 등으로 관심의 폭이 넓어진다. 한국에서는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남자들이 요리에 도전하는 사례가 늘면서 그릇 전문점을 방문하는 남자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100세 장수시대가 도래한 이 시절, '요리하는 남자'가 될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하루 세끼 꼬박꼬박 아내의 신세를 지는 소위 '삼식이'가 되어 구박과 핀잔을 받는 남편이 되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다. 주방 근처에도 가지 않던 남편이 어느날 앞치마를 두르고 아내를 위해 식탁을 마련한다면 그 가정의 행복지도는 다시 그려질 것이다. 게다가 요리는 얼마든지 감각의 변화를 부려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으니 그 창조적 행위의 만족감은 얼마나 크겠는가. 요리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맛있게 함께 먹는 시니어 부부의 모습은 그 자체로 정이 넘친다. 맛있는 걸 찾아다니기 보다는 맛있는 것 만드는 사람이 되어보겠다는 송년 결심은 어떨까. 이원영 / 논설실장

2017-12-12

[진맥 세상] 먹기 위해 사나, 살기 위해 먹나

"다 먹자고 하는 짓인데…" 먹자, 먹자, 온통 먹자판이다. 한국 TV방송은 채널만 돌리면 소위 '먹방'이다. 고상한 산천기행 프로나, 산속에서 혼자 사는 애잔한 스토리나 결국은 먹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카메라 앵글은 스크린 속 맛을 화면 밖으로 살려내는 요술을 부려 침샘을 자극한다. 맛을 장려하는 '공익' 방송에 격려 받은 이들은 곳곳의 맛집을 탐색한다. 요리에 취미 없던 남자들까지 주방으로 불러낸다. 가히 전 국민이 맛의 달인이요, 요리사가 되어가는 시절이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 헷갈린다. 캘리포니아 솔크 연구소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사람들의 하루 일상을 분석했다. 놀랍게도 대부분이 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절반 정도는 잠 자기 전 2시간 내에도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본인이 잘 의식하지도 못하면서 줄기차게 '먹어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시간제한 다이어트'인데 먹는 시간대를 하루 10~12시간(예를 들어 아침 8시~저녁 8시)으로 줄이기만 해도 체중 감량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이다. 자고로 한의학에선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 했다. 음식과 약의 근원은 같다는 것이다. 잘 먹으면 보약이 되지만 잘못 먹으면 독이 되어 병을 부른다는 의미다. 식약동원은 지금도 불변의 진리다. You are what you eat 이라는 표현이 있다.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이라는 뜻이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건강.표정.피부.성격.수명 모든 것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먹는다는 행위, 과연 우리는 생각이나 좀 하면서 먹는 것일까. 입이 원하는 대로 먹어주면 몸에 좋은 것일까. 우리 몸으로 흡수되는 외부의 물질은 크게 두 가지다. 음식과 공기다. 공기는 산속으로 들어가 살지 않는 이상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음식은 나를 살리기도 병들게도 하는 것인데 내가 조절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음식을 조절.통제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먹으면 몸이 알아서 다 소화시켜주고 흡수하고 배설해주는 것 아닌가. 절반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먹은 것에서 필요한 것을 흡수하고 불필요하고 나쁜 것을 걸러내는 과정에서 몸은 엄청난 사투를 벌여야 한다. 먹은 것을 체로 거르듯 스무스하게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특히 대량생산된 채소.육류에 스며든 농약.항생제.성장촉진제, 각종 제조식품의 식품첨가물, 온갖 종류의 약, 이런 것들이 몸속으로 들어가면 흡수 과정에서 국경수비대 역할을 하는 면역체계가 시달릴 수밖에 없다. 매일 그런 게 반복된다고 생각해보라. 그래서 음식은 만병의 원인이고, 만병의 치료제다. 먹는 것의 중요함이 이러할진대 실상은 어떤가. 입맛 당기는 대로 먹는다. 가공된 맛에 '중독' 되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몸을 해치는 정도만 다를 뿐 술.담배.마약이 당긴다고 흡입하는 것이나 본질은 같다. 하나 더. 적어도 먹는 것은 싼 것만 찾지 말자. 비교적 비싼 값의 유기농 식재료를 주로 취급하는 홀푸즈마켓이나 트레이더조에서 꼼꼼하게 식품을 살펴보고 구입하는 백인들이 많다. 한인 마켓에선 유기농 채소 코너가 없거나 있더라도 고객의 손길이 닿지 않아 시들시들한 장면이 대조적이다. 다른 데서 아껴서 먹는 것은 비싸더라도 몸에 좋은 것을 고르는 지혜가 필요하다. 먹는 것은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먹기 위해 살지 말고 살기 위해 먹자. 이원영 / 논설실장·한의학 박사

2017-12-05

[진맥 세상] 시든 잎에 녹색 칠하기

어린 시절 우루과이에 살았던 알레한드로 융거(심장내과 전문의)는 기억을 떠올린다. 페르민이라는 정원사 할아버지다. 융거는 페르민 할아버지가 꽃나무들을 관리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잎사귀와 가지가 누렇게 변했는데 그쪽은 바라보기만 하고 뿌리가 박혀 있는 땅에 물을 뿌리고 비료를 주는 것이었다. 어린 융거는 이해할 수 없었다. 융거는 왜 시든 이파리와 가지를 돌보지 않고 뿌리만 만지느냐고 물었다. "나무가 아픈 것은 모두 뿌리에서 시작되는 거야. 뿌리가 건강하면 나무도 건강하단다." 융거는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할아버지의 손길이 닿는 나무들은 싱싱하게 되살아났다. 융거는 뉴욕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수련의 시절 몸을 혹사하는 바람에 심각한 건강의 위기를 맞았다. 살이 찌고, 앨러지가 생기고, 소화장애, 거기다 우울증까지 겹쳐 만신창이가 되었다. 융거는 심장 전문의 길을 포기하고 인도로 떠나 전통의학인 아유르베다와 한의학을 공부했다. 온전한 건강을 회복한 융거는 몸을 망치는 것은 불량음식을 포함한 온갖 독소들이며, 이같은 독소를 미리 막고 배출시키는 것만이 질병 예방과 치료의 길임을 스스로의 몸을 통해 깨닫게 됐다. 미국으로 돌아온 융거는 '클린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클린'이라는 책은 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융거는 20여년 간 환자를 돌봐오면서 다시 페르민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훌륭한 의사는 훌륭한 원예사와 같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런 예를 든다. 어느날 나뭇잎이 시들어가는 것을 발견하고 원예사를 불렀다. 그런데 나뭇잎을 자세히 관찰한 원예사가 "잎을 녹색으로 칠하면 싱싱해 보일 것입니다"라고 했다면 그를 믿겠는가. 융거는 현대의학이 기술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했지만 '환자'를 바라보지 않고 '질병'만 바라보는 접근방식을 고수하는 바람에 시든 이파리에 녹색칠을 하는 엉터리 원예사 같은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녹색 칠하는 정도가 아니라 병든 가지를 잘라내고 다른 가지를 갖다 붙이기도 한다고 개탄한다. 결국 병의 '증상'만 없애려는 의학이라면 시든 이파리에 녹색칠을 해 결국은 죽게 만드는 사이비 원예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융거에 따르면 우리 몸이 외부의 물질을 받아들이는 경로는 4군데다. 공기나 이물질과 접촉하는 피부, 공기를 흡입하는 폐, 음식을 받아들이는 장(위·소·대장 포함), 여성 생식기다. 피부와 폐를 통해 흡수되는 것은 통제하기 어려운 불가피한 요소다. 그러나 장으로 보내지는 음식은 우리 몸에 주입되는 가장 많은 외부 물질인 동시에 얼마든지 관리할 수 있다. 그의 이론을 압축하면 음식을 통해 각종 독소가 몸에 유입되고, 이것이 대부분의 질병을 부르기 때문에 근본적인 질병 예방과 치료는 세심한 먹거리로 독소 유입을 줄이고, 해독하는 것이다. 각종 식품첨가물이 가미된 가공식품, 농약과 항생제 범벅인 채소와 육류 등은 몸에 독소를 집어넣는 1등 공신이다. 융거는 유기농 채소 위주의 클린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고질병들을 치료하고 있다. 한국의 최지훈이라는 독자는 클린 프로그램을 통해 달라진 점 5가지를 밝히고 있다. 의욕과 활기가 넘친다/쉽게 잠들고 아침에 푹 잔 느낌으로 일어난다/자주 체하던 증상과 두통이 사라졌다/피부에 윤기가 흐르고 트러블이 생기지 않는다/몸에 좋은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이 당긴다. 시든 잎을 녹색칠로 살릴 수 없듯, 병든 몸은 독소를 '클린'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그의 의학적 혜안에 크게 공감한다. 참고로 그가 권하는 아침 셰이크는 정수한 물, 너트 밀크, 시금치, 아보카도, 견과류, 단백질 분말, 아마씨, 천일염 약간 등을 믹서로 갈아 만든다. 이원영 / 논설실장·한의학 박사

2017-11-28

[진맥 세상] 고혈압약 '미끼'는 또 던져졌다

생각해보자. 10층 짜리, 20층짜리 아파트가 있다고 치자. 10층까지 수돗물을 밀어올리는 수압과 20층까지 올리는 수압이 같을 수 있을까. 높은 층까지 수돗물을 밀어올리려면 더 많은 압력이 필요할 것은 자명하다. 사람의 신체 구조와 생리적 환경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는 장신에 비대하고, 어떤 이는 단신에 홀쭉하다. 누구는 육식 위주의 과식 습관으로 혈액이 걸쭉하고, 누구는 채식 위주의 소식으로 피가 상대적으로 맑다. 어리면 혈관이 부드럽고 나이 들수록 딱딱해진다. 혈압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피를 온몸으로 순환시켜주기 위한 심장의 압력이다. 체형이 크거나 혈액이 탁하거나, 혈관이 딱딱한 사람의 피를 돌려주려면 강한 심장의 압력이 필요할 것이요, 그 반대라면 낮은 혈압으로도 가능하다. 사람마다 혈압이 제각각 나타나는 것은 그래서 지극히 정상이다. 그런데 의료계에서는 '정상혈압' 기준치라는 것을 획일적으로 정해 놓았다.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는 혈압을 하나의 기준에 맞춰 정상, 비정상으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상식에 맞지 않는다. 최근 또 하나의 '고혈압 뉴스'가 매스컴을 뒤덮었다. 기존의 '정상혈압' 범위였던 140(수축기)/90(이완기)을 130/80으로 낮춘다는 것이었다. 미심장협회(AHA)와 미심장병학회(ACC)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이었다. 이유인 즉 수축기 혈압 130~139가 그 이하인 경우보다 심근경색·뇌졸중·신부전 등이 2배로 높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위험을 무릅쓰지 말고 혈압약을 먹으라는 얘기다. 이에 따라 미국에선 성인 3000만 명 이상이 새로 '고혈압 환자' 군에 포함됐다. 성인 인구의 32%이던 고혈압 환자군이 46%로 늘어났다(제약회사의 함박웃음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왜 혈압약으로 인한 부작용은 얘기를 하지 않나. 혈압약을 먹게 되는 것은 '혈압이 높아 뇌혈관이 터질 수 있다'는 공포심 때문이다. 그러나 뇌졸중 중에서 혈관이 터지는 뇌출혈은 13% 정도에 불과하고, 85%는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이다. 뇌경색은 혈압이 높아서가 아니라 혈류가 느려져 혈관에 찌꺼기가 쌓여 발생한다. 일본 도카이 대학 연구에 따르면 혈압약 복용자는 비복용자에 비해 뇌경색 발생률이 두 배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고혈압약 부작용 때문에 쓰러져도 '고혈압으로 쓰러졌다'고 세상에 전파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혈압약으로 낮춘 혈압으론 뇌세포 구석구석까지 피를 돌리지 못한다. 뇌세포의 괴사가 조금씩 발생하고 이것이 치매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부작용을 우려하는 의사들 소견이다. 또 하나. 이번에 새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미심장협회가 과연 인류의 건강을 위하는 프로페셔널 단체일까. 이 단체는 연간 10억 달러 이상을 제약회사와 식품업계로부터 지원받는 로비 단체에 불과하다(조한경 저 '환자혁명'). 제약회사, 각종 의학협회, 식품의약국(FDA)은 서로 갈고리처럼 물고 물리는 거대한 이익공동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자, 미심장협회가 제약회사 편일까, 인간애 넘치는 순수한 단체일까. 비판도 거세다. 미국 내과학회 니스 댐르 회장은 "기준을 낮춘 근거가 희박하다. 인위적으로 낮출수록 부작용도 커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고혈압은 병이 아니다'라는 책을 쓴 마쓰모토 미쓰마사는 말한다. "약간 신경 쓰이는 정도의 혈압이 큰 병을 일으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고혈압증이야말로 제약회사의 이익 때문에 만들어진 허구의 병이다. 이것이 40년 이상 10만 명을 진찰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제약회사들의 낚시에 쉽게 낚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이원영 / 논설실장

2017-11-21

[진맥 세상] 텅 비고 충만했던 어느 결혼식

페이스북에서 날카로운 현실 비평으로 1만여 명의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는 박찬운 교수(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지난달 30일 본지 오피니언에 '영혼 없는 대한민국 결혼식'이라는 글을 올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곳 한인사회는 한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직도 한국식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허례허식의 관행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 교수는 "사실 나는 결혼식에 가면 우울할 때가 많다. 그 많은 하객 수에 놀라고 그 호화스러움에 주눅이 든다…지금 같아서는 내 자식 결혼식을 치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결혼식은 낭만도 즐거움도 찾을 수 없는 그저 허례허식일 뿐이다"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이렇게 결혼하는 자녀들의 인생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이런 결혼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할 것인가"라고 개탄했다. 그의 글을 읽은 이들은 폭발적인 공감을 보냈지만 막상 자녀 결혼식이 내 문제가 되면 그런 관행에서 과감하게 이탈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박 교수가 탄식했듯 한국의 '영혼 없는' 결혼식 관행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텅 비었지만 충만한' 결혼식을 올린 40살 동갑내기 커플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생활 근거지인 부산에서 일주일 일정으로 왔다. 지난 토요일 LA인근 말리부에 있는 페퍼다인 대학교 예배당에서 주례를 맡은 최재영 목사 부부와 축도를 부탁받은 동료 목사 부부, 김주석(성서원어 교사)·이지원(미용사) 커플만 참석한 결혼식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두 사람은 돈과 물질이 판치는 한국사회의 결혼식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늦깎이 결혼식을 앞둔 커플은 그들의 결혼식을 어떻게 치를 것인지 고민하다 한국에서 알게 되었던 LA의 최 목사에게 약식 결혼식 주례를 부탁한 것이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웨딩 복식을 나름대로 준비를 해와 결혼예복 흉내도 냈다. 하객도, 예물도, 축의금도, 꽃단장도, 웨딩마치 음악도, 축가도 없었지만 "멋지고 성스러운" 결혼식이었다며 부부는 오히려 감격해했다. 신혼부부는 경비를 아끼기 위해 중국을 경유하는 저가 항공을 이용했고, 3박 4일 서부여행을 마치고 돌아간다. 혹시 결혼식을 앞두고 집안의 반대나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전혀 아니고 단지 허례허식이 싫어서 둘이 결정한 것이고, 양가에서도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물론 한국에서 다시 한번 결혼식을 치를 계획은 전혀 없단다. 주례를 본 최 목사는 "많은 주례를 섰지만 지금까지 그 어느 결혼식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자유함과 성스러움이 식장을 압도했다"고 감격을 감추지 않았다. 감동은 결혼식으로 끝나지 않았다. 결혼식 이틀 전 최 목사와 우연한 식사 자리에서 한국서 온 한 커플의 결혼식 계획을 들은 윌리엄 이(55)씨는 "우리집에서 피로연을 엽시다"고 전격 제안했다. 알지도 못하는 신혼 커플을 위해 정성을 다해 조촐한 바비큐 파티를 열어준 것이다. 이씨와 친구인 나는 이 자리에 초대받아 참으로 비현실적(?)인 즐거움을 함께 나누었다. 가정집 피로연 접대를 받은 이 커플의 표정 역시 감격스러움 그 자체였다. 김주석·이지원 커플은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한국사회와 교계에 신선한 감동을 선사하는 부부가 될 것이라 믿는다. 이원영 / 논설실장

2017-11-07

[진맥 세상] 글, 노년의 행복 자격증

모터사이클 마니아인 친구는 굉음과 함께 달리는 그 짜릿한 재미에 비할 것이 없다고 했다. 그가 글을 읽는 것은 아주 낯선 작업일 수도 있겠다. 그가 글(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그에게서 카톡이 왔다. "사실 신문에서 무엇을 얻고 자시고 할 만큼 적극적인 사회생활을 안 하고 있었는데 친구의 도움으로 나도 무엇인가 또는 어떤 부분인가 (세상에) 참여하고 살고 있다는 느낌을 친구가 권유한 신문으로부터 느껴보며 살아야 할 것 같으이. (신문을 읽게 해준) 친구의 마음을 고맙게 생각하며 또다른 느낌의 아침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네…고마우이" '또다른 느낌의 아침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친구의 말. 신문을 만드는 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더 이상의 찬사가 없다. 신문을 통해 일상에 없던 작은 기쁨이 그에게 생겨난 것 같아 흡족했다. 글을 쓰는 일을 하다보니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글이나 책을 소재로 삼는 때가 많다. 특히 일반 오피니언 독자 투고를 담당하며 글을 쓰고 읽는 재미를 만끽하면서 사는 시니어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노년의 삶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눠 글과 함께 하는 노년/글을 등지고 사는 노년으로 구분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최근에 기고를 보내기 시작한 정모(여)씨는 70대 중반. 손글씨로 보낸 첫 기고가 지면에 반영된 날 "너무 기뻐서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남편과 함께 신문을 구석구석 읽는 것이 일과의 커다란 기쁨이라면서 "신문은 내 가족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반려견이 있듯 그에게 신문은 반려 '문'인 셈이다. 80대 중반인 나의 장인 어르신은 "신문 읽는 즐거움을 아침에 다 누리는 것이 아까워 일부러 몇 페이지는 읽지 않고 남겼다가 저녁에 읽는다"고 하신다. 맛있는 것 아껴 먹는 것이나 진배없다. 신문 읽기를 즐기는 이들은 대체로 책과도 친하다. 대단한 독서가로 알려진 60대 중반 백모씨는 매달 상당 분량의 책을 구입한다. 물론 다 읽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읽지 못해도 나중에 나이 들고 시간 많을 때 읽을 책이 방에 한가득 있는 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부자가 된다"고 말한다. 글을 가까이 하고 지내는 노년들은 한결같이 무언가 매일 새로 배우는 것이 좋다고 한다. 글을 읽으며 생각을 하게 되고 기억력도 좋아지고, 내적인 충만감을 얻는다고 한다. 더불어 오는 좋은 낯빛은 덤이다. 예전에 어느 시니어와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하루 일과 어떻게 보내세요?" "눈 뜨면 오늘은 뭐할까 그게 가장 큰 고민이야. 인터넷 여기저기 클릭하고 가끔 야동도 보고…시간이 너무 많으니까 아침에도 짐(gym)에 가고 저녁에도 가고 하루 서너시간은 짐에서 보내. 뭐 시간 보내기 좋은 거 없을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많아지는 시간, 그걸 때우는 것이 고민이라는 시니어들이 적지 않다. 대개 글과 담을 쌓고 사는 이들이다. 가끔 시니어들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즐겨한다면 그것은 노년을 행복하고 보람있게 보낼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무기를 지닌 것"이라고. 나이 들면서 외적인 것들은 대개 비슷해진다고 한다. 글을 가까이 하며 배우고 익히는 내적 충만감이야말로 진정한 노년의 부요함이요, 글은 그 샘이 아닐까. "당신은 책이라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당신은 분명히 생활 가운데 부질없는 야심과 쾌락의 추구에만 열중하고 있을 것이다."(볼테르) 책이든 신문이든 글을 벗하며 내적 즐거움을 누리는 시니어들의 모습을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 글이 주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더 많은 사람들이 누렸으면 좋겠다. 신문을 벗하기 시작한 친구여, 자네는 충만한 노년을 위한 중요한 자격증을 하나 갖췄네. 이원영 / 논설실장

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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